2016년 1월 16일 토요일

응8은 남편찾기가 아니라 자존감 낮은 덕선이의 성장기

이게 절대 흔한 일이 아님. 원래 극영화 주인공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많음.
왜냐? 주인공이 자존감이 낮아버리면 관객들이 짜증내거든... 마치 지금처럼.

하다못해 자존감 낮은 주인공을 다룬 위키드같은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자존감을 찾아가는 내용을 다루지
말그대로 자존감 낮은 주인공을 계속 보여주지는 않음...
이게 응8의 도전이었다고 생각함. 왜냐? 테레비 보는 우리들 중 열에 아홉은 자존감이 바닥이니까.
우린 그래서 자존감 높은 주인공을 원함. 바보같은 자신의 모습을 테레비에서까지 보고싶어하진 않으니까.

가난해도 싹싹하고 자존감높은 예쁜 (때론 출생의 비밀 가진) 여주인공이
부자지만 자존감낮은 악녀를 물리치는 게 한국 드라마 90%의 내용 아니겠음?

근데 응8은? 가난하고 싹싹하지만 자존감 낮은 여주인공이 나옴. 계속 질질 끌려다님.
어남택? 어남류? 이게 무슨 뜻임? 덕선이의 마음이 안 나와. 시청자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거임.
자존감 낮은 사람이 남들한테 질질 끌려다니듯이 덕선이도 그런 거임.

심지어 응답하라 전작들을 봐도,
시원이는 바보였지만 자존감은 높고, 나정이도 쓰성님한테 질질 끌려다닐지언정 자존감은 높음.
다른 하숙생들 돌봐주는 모습도 그렇고...

근데 덕선이는 아님.

인간의 자존감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게 결국 가족임.
(오빠나 언니에 대한 슬픔은 있지만) 사랑을 넘칠만큼 받아 밝고 싹싹한 다른 개딸들과는 달리 덕선이는 사랑을 제대로 못 받음.
1회인가 2회인가에서 둘째딸 설움 폭발하는 모습이 예고였던 것임. 이 작품은 자존감 낮은 덕선이의 성장기라는 걸.
'왜 날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여주가 도대체 어디 있음?

일단 경제적 문제. 다른 개딸들과는 달리 덕선이네는 가난함. 
'가족의 사랑' 이런 식으로 미화시키긴 했지만 가난하면 자존감이 낮아짐.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임. 인간은 다 똑같다고.

그리고 나정이는 계속 '예쁘다'는 걸 강조하는 장면이 나옴. 근데 덕선이한테는 예쁘다고 해 주는 사람이 없음.
혜리가 예쁘냐 안예쁘냐가 아니고, 극중에서도 계속 남자들이 예쁘다고 하던 나정이와는 달리
덕선이한테는 예쁘다고 해 주는 사람이, 아니 관심이라도 가져 주는 사람이 없음. 
아니 딱 한 명 있는데 그게 삼천포...아니 김성균 아재임. 오히려 성동일아재보다 김성균아재가 더 아빠같음. 그렇지 않음?

그리고 둘째딸 문제. 거기에 보라는 서울대 다니는 우등생이고 노을이는 어리숙함. 
보라는 부모님의 자랑, 노을이는 부모님의 관심을 받음. 
근데 덕선이는? 

덕선이가 운동화 비싼거 필요없다고 한 장면. 어른스러운 아이라고 부모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고작 고2 학생이 비싼 운동화 싫다고 말한다는건 얘가 자존감이 낮다는 뜻 밖에 안 됨. 
같은 어른스러움이어도 나정이와는 다름. 나정이의 어른스러움이 높은 자존감에서 나오는 진정한 돌봐줌이라면
덕선이는 본능적으로 '착한 아이'처럼 굴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임. 

이 작품의 도전이자 잔인한 점은 그 다음임.
보증서서 도망간 동일아재 친구가 돌아오면서 가족 경제적 사정도 폈음.
시간이 지나 덕선이는 (당시엔 훨씬 그랬고 지금도 선망받는) 스튜어디스가 됨.

이 지점에서 시청자들이 짜증난 것도 이해가 됨.
이젠 확실하게 행동하는 걸 보고 싶은 거야. 
보통 드라마였으면 여기서 덕선이가 자존감을 높여서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결국 택이든 정환이든 사랑을 쟁취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냈을 거임.

근데 아님... 이게 레알 현실적임.
상황이 달라진다고 해서,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낮은 자존감이 쉽게 높아지진 않는 거니까.
사춘기에 자존감이 낮게 형성된 사람은 결코 그 상처를 극복하거나 할 수 없음.
그저 그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법을 익혀야 됨... 우리 모두 그렇듯이

돈을 많이 벌어도,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뒤늦게 사랑을 넘칠 만큼 받아도 비어 있는 마음의 부분은 채워지지가 않음...
제작진은 잔인하게 묻는다. 등장인물들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물어보는 것임

덕선이를 봐. 답답하고 짜증나지? 그런데 이게 네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자, 그럼 어떻게 할까? 상처를 가진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흥미롭게도 바로 1회에서 이 질문의 원형을 볼수 있음.

덕선이가 마다가스카르 피켓걸로 엄청 좋아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걸 보여줌. 
자존감이 낮은 덕선이에게는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이 일이 너무 중요했을 것임.
관심종자라는 게 아님. 관심을 받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라고.

근데 마다가스카르가 빠지면서 못 나가게 됨.
여기서 덕선이는 울며불며 소리치고 난리피우지 않음.
'억제'라는 방어기제를 씀. 울 것 같으면서도 인터뷰에서 좋은 말만 함.

이게 덕선이의 인지도식임. 무조건 참는 것. 그래서 좋은 아이가 되는것.
이렇게 상처받은 덕선이가 폭발하는게 둘째딸 설움이라는 건 그래서 아주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음.
아예 1화부터 대놓고 알려준 거임... 남편찾기가 아니라는 걸.

물론 극중에선 우간다인가 다른나라 피켓걸로 덕선이가 나가게 됨.
그리고 이제 질문을 던질 차례임.
자, 우간다 피켓 걸로 나갔다고 해서 덕선이가 받았던 상처가 모두 사라졌을까? 





++
낮은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일관되게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음.
하나는 물론 자기 자신을 가꾸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돌봐주기'. 나 이외의 타인을 다정하게 돌봐주는 것. 
중국 호텔에 덕선이가 따라갔던 장면을 보면서 어남택이라고 확신했음 ㅋ

댓글 없음:

댓글 쓰기